금요일엔 역시 꾸스꾸스!

2016. 4. 8. 13:22테투아니 in Morocco

모로코에서는 금요일이 휴일입니다. 우유가 마침 똑 떨어졌는데, 그 날이 금요일 아침이다! 하면 

그냥 우유를 포기하는 편이 낫습니다. 아침에는 슈퍼들이 문을 닫거든요(적어도 우리 동네, 떼뚜안에서는요!). 

슈퍼 몇 군데를 다녀도 문은 닫혀 있습니다. 그제서야 '아! 오늘 금요일이지!'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됩니다. 


90% 이상이 무슬림 신자인 모로코에서 금요일은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주요 모스크 주변에는 실내로도 모자라 바깥 바닥까지 매트를 깔고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자연스레 모스크 근처의 도로는 통제되고, 차들은 돌아가거나 멈춰서서 기도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모스크 주변 차도에 빽빽하게, 가지런히 앉아 기도를 하는 사람들, 기도가 끝나면 매트를 돌돌 말아 옆구리에 끼고 흩어지는 모습, 라바트 같은 대도시(모로코의 수도)에서 양복을 차려 입은 도시인들이 모스크에서 매트를 옆구리에 끼고 쏟아져나오는 모습은 이방인에게 늘 신선하고 재미난 광경입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로 사진은 찍지 않는 편이 좋은 것 같습니다)


무슬림이 아닌 우리 셋은 매주 금요일 점심에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식당으로 향합니다. 우리에게 금요일 점심은 외식의 날입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메뉴를 의논할 필요도 없이 주문을 마칩니다. 

금요일은 꾸스꾸스를 먹는 날이거든요! 우리 뿐 아니라 옆 테이블에 앉은 금요일의 기도를 마치고 온 모로코 사람들도 삼삼오오 앉아 꾸스꾸스를 나누어 먹고 있습니다. 




꾸스꾸스는 북아프리카에서 주로 먹는 음식으로 굵게 간 밀가루나 수수, 조, 때로는 쌀을 쪄서 만들기도 하고, 찐 채소나 고기를 올려서 함께 먹습니다. 채소로는 당근, 감자, 호박, 양배추 등이 주로 들어가고 고기는 닭고기나 염소고기, 양고기, 소고기를 사용합니다. 꾸스꾸스를 주문하면 '르벤'이라고 불리는 마시는 요구르트를 함께 갖다주시는데, 맛의 어울림이 꽤 좋습니다!(배고파지네요...) 누군가는 꾸스꾸스를 '가장 작은 파스타'라고 소개하기도 하지만 밥이 주식인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포슬포슬하게 찐 곡물 밥에 고기와 채소를 얹은 요리, 굳이 말하자면 영양밥에 더 가까운 듯 합니다. 





꾸스꾸스 조리 냄비.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요즘은 인스턴트 꾸스꾸스도 나온다고는 하나, 전통적으로 꾸스꾸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곡물을 찌고 작은 알갱이들이 서로 엉겨붙지 않게 올리브 오일을 뿌려가며 여러번 뒤집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주로 냄비가 두 개 겹쳐진 형태의 용기를 사용하는데, 아래 냄비에서는 고기와 야채 등을 삶아 국물을 내고, 윗 냄비에서는 곡물을 찌는게 일반적인 요리법입니다. 재미있게도 이 꾸스꾸스 전용 냄비는 10세기 이전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지금의 꾸스꾸스 조리용 냄비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옛날에는 토기를 사용했을 뿐 형태는 거의 유사합니다! 요리법과 조리 도구가 천 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요리가 얼마나 될까요? 꾸스꾸스를 먹을 때마다 수백년, 천 년 전에 꾸스꾸스를 먹었을 사람들을 상상해 보는 기분도 독특합니다. 


모스크에 다녀온 금요일, 가족들끼리 모여 앉아 왜 하필 꾸스꾸스를 먹을까? 하는 호기심에 하루는 모로코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적은 재료와 저렴한 비용으로 여럿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음식이 꾸스꾸스이기 때문이라고 친구가 말하더군요. 곡물을 쪄내고 달라붙지 않게 뒤집는 과정이 단순해 보이지만은 않지만, 먼 옛날부터 꾸스꾸스는 '영양가 높은' 혹은 '음식' 과 같은 의미로 불리며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해왔습니다. 조리 도구가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특히 유목민이나 여행자의 음식으로 사랑받았고요. 역시 여럿이 함께 나누어 먹는 상황에 어울리는 음식입니다. ^-^ 



지금은 관광지에 있는 식당을 제외하면 오직 금요일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꾸스꾸스입니다. 다른 요일에 식당에 가면 만들어주지 않아요. ㅎㅎ 



+덧. 지중해 음식의 역사에 대한 글을 쓰는 블로거가 꾸스꾸스의 역사를 정리해놓은 글이 있길래 재미삼아 번역해 봤습니다. 꾸스꾸스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