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6. 05:22ㆍ테투아니 in Morocco
메디나 생선 파는 골목에서 정어리 1kg 을 구입했습니다. 12디르함, 우리 돈으로 약 1,500원 정도.
메디나에서 숯도 1kg(7디르함, 약 900원) 구입했고요, 오늘 저녁식사는 정어리 구이입니다!
물고기를 먹기만 했지 직접 손질해본 적은 처음이네요. 손질이라기엔 민망하게도, 시장에서 아저씨가 이미 머리랑 내장을 떼고 주신 걸 살살 씻으면서 비늘 벗긴 수준이지만요. 정어리랑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다행입니다 ㅎㅎ
내 인생에서 정어리와 관련된 기억이라곤(적어도, 기억에 남아 있는 기억이라곤), 다음과 같은 것들.
1. 정어리 페이스트
스웨덴에 사는 사촌이 한국 놀러올 때 가져온 빵에 발라먹는 치약 같이 생긴 정어리 페이스트. 당시엔 특유의 그 비린 맛에 먹지 못하고 우리집 냉장고에 몇 년 방치되어 있었지요. 그곳에 늘 있지만 식구들은 모른척 했고 그러길 몇 년, 어느날 특별하지 않게 버려졌던 정어리 페이스트입니다.
얼마전 스웨덴에 가서 다시 한 번 먹어봤는데, 꽤 맛있더라고요! 빵에 발라도, 젓갈처럼 밥에 살짝 얹어 먹어도 꽤 괜찮습니다.
2. 밀레프트의 정어리
모로코에 처음 왔을 때 밀레프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손으로 먹었던 정어리 구이. 이미 저녁식사를 마친 후였지만 집주인 압둘라 no.1이 친구들 만나러 나간다기에 호기심에 따라 나갔다가 맛본 숯불에 구운 정어리였지요. 손으로 정어리를 헤집어 뼈 골라내고 뜨거움을 호호 불며 먹었는데, “하나만 먹을게”로 시작해서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정어리 뼈들을 마주보고서야 끝났던, 정어리들.
그리고 오늘,
숯에 정어리를 구워 먹자고 사온 정어리. 내가 씻고 있는 이 정어리들.
페이스트로 먹을 땐 알 수 없었던 정어리의 생김새를 숯불 구이를 먹을 때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밀레프트에서의 정어리에 대한 기억은 손 끝에 닿던 정어리 뼈와 뜨거움입니다. 손 끝에 기억된 정어리.
오늘 정어리를 손질하면서는 더 자세히 정어리의 푸른 등 빛을, 배 쪽으로 내려오며 하얗게 변하는 색깔을, 동그란 점들을, 투명하고 단단한 비늘을, 몸에 찰싹 달라붙은 등 지느러미와 단단한 살, 매끄러운 유선형의 몸을 손 끝으로 하나하나 자세히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어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 확실하게 알 수 있어요.
살이 꽤 단단했고, 비늘은 탄탄합니다.
등지느러미는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가 손으로 잡아당기면 촤라락 펼쳐지는 것이 신기했고요.
태평양과 북해, 지중해를 빠르게 헤엄치고 다녔을 정어리들을 상상하게 하는 내 손 끝에 와 닿는 느낌들.
신이 정어리를 만들었을 수도 있고, 어부가 힘겹게 정어리들을 바다에서 끌어올렸겠고, 운반하는 사람들이 피곤함에 쩔어 정어리를 테투안 메디나까지 옮겨왔을테고, 정어리 팔던 아저씨는 머리와 내장을 떼 주셨지요.
이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지만, 정어리에게 가장 감사해서 감사의 기도 그림을 그려두었습니다.
무리지어 대서양과 지중해를 오고가다가, 큰 물고기들에 잡혀 먹힐 뻔한 위기를 모면했다가 그물에 잡혀 우리집 저녁상에 오른 정어리들에게 감사히 잘 먹겠다고 그림을 그리며 기도를 드렸답니다.
#반짝정보
#정어리
조선에서는 ‘바다의 쌀’이라고 불렸고, 영어의 사르딘 Sardin은 지중해 섬 사르데냐 인근에서 많이 잡혔다 하여 그 이름을 따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름이 풍부해 일제 강점기 때 석유 대용으로 정어리 기름을 군수용으로 활용하던 일본이 한반도 동해안에서 정어리를 싹쓸이해갔다. 그런데 정어리는 (아직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50여년의 주기로 어획량의 양이 크게 변동하며 일제 강점기가 끝날 무렵인 1943년에 급기야 어획량이 ‘0’을 기록. 일본을 망하게 한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서 ‘일망치’ 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정어리는 동물성 플랑크톤이 주 먹이인 하위 단계 먹이사슬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금속 함량이 연어, 참치 등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생선에 비해 현저히 낮다.
비타민 D, 마그네슘, 미네랄, 인 등이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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