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9. 08:07ㆍ공부_지중해
꾸스꾸스의 역사
출처 : http://www.cliffordawright.com/caw/food/entries/display.php/id/34/
*재미로 옮겨본 글입니다~ 혹시 두 글을 비교해 보신 분은 수정이 필요한 부분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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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스꾸스는 마그립 지역의 주식으로 조리도구가 적게 필요한 음식이다. 유목민이나 농업을 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적인 음식이다. 꾸스꾸스의 준비과정은 음식인류학자의 말을 빌리면 ‘행복과 풍요’를 상징한다.
꾸스꾸스가 문헌상에 가장 처음 등장한 것은 익명의 저자가 13세기에 집필한 스페인-무슬림 요리책인Kitāb al-ṭabīkh fī al-Maghrib wa’l-Āndalus에서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라케쉬에서 유래된 alcuzcuz fitīyānī 라는 한 요리방법을 소개하며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아랍 정관사인 al을 붙인걸로 봐서 꾸스꾸스는 애초에 아랍 음식이 아니라 베르베르 음식이었던 걸로 여겨진다(?). 꾸스꾸스를 의미하는 아랍 표현에서는 정관사를 쓰지 않고 있다. 어쨌든, 그라나다의 나스리드 왕조가 꾸스꾸스를 먹었다는 사실을 그라나다의 행정관이었던Abū cAbd Allah bin al-Azrak이 쓴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내게 꾸스꾸스에 대해 말하라, 고결하고 기품있는 그것에 대해”
Ibn Razīn al-Tujībī가 11세기 후반 / 13세기에 쓴 스페인-무슬림 요리책인Kitāb faḍālat al-khiwān에도 꾸스꾸스의 요리법에 대해 나오고있다.
유명한 아랍 여행가인 레오 아프리카누스(Leo Africans / c. 1465-1550)도 꾸스꾸스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하루에 한 번 씩 먹어야 하는게 있다면 꾸스꾸스이다. 저렴하고 매우 영양가가 높다”
알레포 출신의 시리아인 역사가Ibn al-cAdīm가(십자군 전쟁의 영웅 살라딘의 조카의 아들이라 알려짐) 13세기에 썼거나 엮은 책인Kitāb al-wuṣla ila l-ḥabīb fī waṣfi aṭ-ṭayyibāti wāṭ-ṭīb 에서 꾸스꾸스의 네 가지 요리법에 대해 적고 있다. 세 가지 방법은 슈카리야shucaīriyya라고 불리고 네번째 요리법은 마그리브식 꾸스꾸스라고 불린다. 슈카리야는 오늘날 레바논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부러진 가는 국수’라는 뜻 또는 오르쏘 orzo라고 불리는 쌀 모양의 파스타를 일컫는다.
마그레브 지역에서 꾸스꾸스가 흔한 음식이라는 것과 빠르게 동부 아랍 세계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자료들은 이른 시기부터 나타난다. 필자가 보기에 꾸스꾸스는 마그레브에서 시작되어 발전했고 레반트 지역에서는 매우 생소했던 걸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콜럼비아 대학의 리사 앤더슨 교수가 주장한 북아프리카 지역의 ‘꾸스꾸스 라인’이 시드라 만(gulf of Sirte)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트리폴리타니아(리비아 북서부의 지중해에 면하는 지역) 서쪽지역 사람들은 꾸스꾸스를 먹는다. 키레나이카(리비아 동부 지역) 동쪽은 이집트 음식을 먹는다. 꾸스꾸스는 시드라 만의 동쪽을 넘어서면 굉장히 독특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마쉬라크(동부 아랍)에서는 꾸스꾸스의 한 형태가 마그리비야 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이는 꾸스꾸스가 마그리브(서부 아랍, 북아프리카를 가리킴)의 음식으로 여겨졌다는 의미이다. 현재에도 키레나이카 지역과 서부 이집트 사람들은 꾸스꾸스를 즐겨 먹지 않는다. 하지만 모로코, 알제리, 튀지니 지역과 트리폴리타니아에서는 꾸스꾸스가 주식이다.
꾸스꾸스를 먹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이른 시기부터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키스키스라고 불리는 꾸스꾸스를 만드는 냄비 모양의 용기가 자연적인 재료로 테라코타로 만들어졌고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냄비 형태의 용기 조각이 알제리의 첼랄라 지역의 중세 무슬림 지층에서 발견되었지만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흥미롭게도 16~17세기에 쓰여진 꾸스꾸스 요리법은 지금의 그것과 다른 것이 없다는 점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꾸스꾸스는 12세기경 튀지니에 도입되었을 것 같다. 역사학자 하디 로저 이드리스와 로버트 브룬쉬빅이 수행한 지리드(972-1148) 왕조와 합시드 튀니지아 왕조(1228-1574)에 대한 기념비적인 연구에 따르면 12세기 지리드 왕조의 기록에서는 꾸스꾸스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지만 13세기 합시드 왕조시기에는 여러 자료들이 나온다. 위대한 아랍 작가인 알무카다시(985-990년경 집필)는 그가 접한 음식에 대해서 적었지만 꾸스꾸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븐 나지를 포함한 합시드 시대의 많은 성인들이 꾸스꾸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고, 이븐 나지는 부르쿠키스를 고기와 함께 먹는 거친 입자의 꾸스꾸스라고 소개하며 마그리비야와 더불어 사실상 이상적인 음식이라고 말한다. 15세기 메카 수례자인 튀지니인 이븐 파드랄라는 녹인 버터, 쇠고기, 배추와 함께 요리한 꾸스꾸스를 묘사하고 있다.
14세기까지 세카 파스타와 꾸스꾸스에 대한 여러 사료들이 있다. 1505년 그라나다에서 발행된 In Pedro de Alcala’s Vocabulista 에는 꾸스꾸스가 거친 밀반죽 음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17세기 다마스커스에서 집필 활동을 한 역사가 알 마카리는 15세기에 마그리브에서 온 아픈 사람을 다마스커스의 한 사람이 도와준 일화에 대해서 적고 있다. 꿈에서 선지자가 그에게 아픈 이에게 꾸스꾸스(kouskoussoun) 를 먹이라고 이야기한다는 내용이다. 약 백년전에는 위대한 아랍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8-1378) 역시 꾸스꾸스에 대해 언급했다.
북유럽에서 꾸스꾸스에 대한 가장 이른 언급은 브리타니에서였다. 1699년 1월 12일로 표기된 기록에서 당시 해군장관이었던 찰스 드 클레어볼트는 모로코 대사관인 압 알라 빈 아이샤가 열었던 파티에 대해서 말하며 18명이 각자의 밀가루를 가져와 라마단을 위해 꾸스꾸스를 만들었으며 맛이 좋았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더 이른 시기에 꾸스꾸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며 여행가인 장 자크 부차드가 1630년에 뚤론에서의 식사에 대해 적은 곳에서 “쌀과 같은 작은 알갱이 곡물로 만든 파스타의 일종으로 요리할 때 꽤 부풀어 오른다. 레반트 지역에서 온 음식이며 꼬르쿠소우 courcoussou라고 불린다”라고 적고 있다. 명확하지 않지만 흥미로운 점은 꾸스꾸스를 북아프리카가 아닌 레반트 지역에서 온 음식이라고 적고 있는 것이다.
꾸스꾸스는 고기, 생선, 채소와 향료를 함께 넣고 만든다. 요거트나 녹인 버터로 단순하게 요리하며 배고픈 여행자에게는 포만감을 느끼는 음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즉, 유목 생활을 하는 베르베르인들의 음식으로 이어져왔다. 수세기동안 아프리카 흑인 여성들은 꾸스꾸스 요리사로 고용되었으며 이는 꾸스꾸스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통음식이라 여겨지게 된 이유였다. 오늘날까지도 모로코에서는 가정부로 일하는 젊은 사하라 흑인 여성이나 사하라 이남 여성들이 꾸스꾸스를 만드는 요리사로 고용되고 있다. 투아레그라고 불리는 사하라에서 온 무슬림 베르베르족은 젊은 흑인 노예를 고용해 꾸스꾸스를 만들었다. 흑인 노예는 중세부터 19세기까지 이집트에서 가정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슬림이 스페인을 통치하던 시기, 보통의 가정에서 주부들이 음식을 준비했던 것에 반해, 귀족 가정에서는 흑인 노예를 고용해 음식 준비를 시켰다.
꾸스꾸스를 최초로 만들어 먹었다고 알려져 있는 베르베르 민족과 아라비아에서 이주해온 모로코인들은 꾸스꾸스를 세크로우 또는 세크수 라고 불렀다. 지중해 동부의 나라에서는 마프툴 또는 마그리비야 라고 불렸고, 수단에서는 수크수카니야라고 불렀다. 모로코의 다양한 베르베르 민족은 꾸스꾸스를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렀는데, 아부 이사펜(?)은 쉑슈, 리프 산맥의 베르베르인들은 시쉬투, 베니 할리마(?)에서는 시수라고 불렀다. 알제리에서는 ‘음식’ 또는 ‘영양가있는’의 의미인 키스크수 또는 탐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꾸스꾸스가 일상의 주식으로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나타낸다. 서부 시실지 지역에서도 알제리의 아랍식 표현이 남아 있다. 튀니지에서는 꾸스꾸스를 키스키시, 키스키스, 쿠스쿠시, 쿠스크시라고 불렀다. 큰 알갱이의 꾸스꾸스는 무함마스 또는 부르쿠키스라고 불렸으며 주로 달콤한 꾸스꾸스를 만드는 매우 잔 알갱이의 꾸스꾸스는 마스푸프라고 불렸다.
꾸스꾸스를 준비하는 과정의 특정한 종류를 일컫는 용어들도 있다. 튀니지의 베자에서는 미세한 꾸스꾸스 알갱이를 신선한 버터와 양고기, 사프란과 병아리콩과 섞어 뜨거운 우유를 뿌린 다음 건포도, 아몬드, 피스타치오, 헤이즐넛과 호두로 마무리한 것을 부르즈칸이라고 불렀다. 말투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보리로 만들었던 꾸스꾸스이다. 조심스럽게 걸러내서 씻고 카낙나라고 불리는 일종의 접시에 넣어 요리했다. 그 후에 빻아서 체에 밭치고 공기 중에서 건조시켰다. 두번째로 체를 받쳐 보리를 남겼다. 계속 체를 받쳐가며 가는 알맹이들은 날아가고 굵직한 것들이 남는다. 남부 알제리에서는 다시샤라고 불렀는데, 밀을 빻아 버터를 넣고 만든 포리지에도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걸러진 작은 알갱이는 보리 꾸스꾸스를 만들거나 후추 소스와 고추, 토마토, 하리사, 양파와 약간의 고기를 넣어 만든 옥수수죽의 일종인 바진 또는 아시다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 때 사용했다. 남부 튀니지에서는 꾸스꾸스 위에 호로파라고 불리는 콩과의 카레 조미용으로 사용되는 재료를 뿌렸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맛좋은 꾸스꾸스는 딱딱한 밀로 만든 것이다. 이것은 마그립 지역에서 11~12세기에 무슬림 베르베르 민족이 처음 먹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페인-무슬림 요리책에 꾸스꾸스 요리법이 나온 것을 증거로 스페인에서 꾸스꾸스가 처음 요리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설득력있지는 않다. 꾸스꾸스 요리 도구가 발전해온 증거들을 보면 국물을 끓이는 장치 위에 곡물을 찌는 도구가 얹어져 있는 냄비가 수단 왕조가 번성했던 시기의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10세기 이전부터 나타난다. 이곳은 현재 니제르, 말리, 모리타니아, 가나, 부르키나 파소 지역이다. 오늘날에도 기니의 유쿤쿤 지역과 세네갈에서는 고기와 땅콩소스를 넣어 만드는 수수 꾸스꾸스와 쌀 꾸스꾸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수수는 남부 알제리의 사막에 사는 유목민들인 켈 아하가르 사람들이 꾸스꾸스를 만들 때 이용한다. 이들은 수세기동안 꾸스꾸스를 만들어 먹었던 서부 아프리카인 수단에서 꾸스꾸스 요리법을 전수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븐 바투타는 1352년 말리로 여행했는데, 오늘날 모리타니아인 그곳에서 수수 꾸스꾸스를 먹었다. “여행자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흑인 여성이 수수와 요거트, 닭고기와 연근가루와 쌀 등을 가져와 꾸스꾸스를 만들었다”. 이븐 바투타는 1350년에 말리 지역에서 먹은 쌀 꾸스꾸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수수 꾸스꾸스는 딱딱한 밀 꾸스꾸스보다 인기가 있지는 않았는데, 요리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비해 맛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꾸스꾸스가 아프리카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É. Lévi-Provençal교수의 저서Histoire de l’Espagne Musulmane ‘스페인 무슬림의 역사’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교수가 10세기의 이븐 알파키흐의 를 인용한 연구에서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수수, founi, black fonio와 손가락조(수수), 나이제리아 곡물로 꾸스꾸스를 만든다. 중부 나이지리아의 하우사 지역과 토고의 람바스에서는 black fonio로 만드는 꾸스꾸스를 우수우수라고 부른다. 수수는 꾸스꾸스 재료로 널리 쓰이는데, 모로코의 베르베르 민족이 수수를 부르는 명칭인 ‘일란’ 혹은 ‘일니’는 서부 아프리카의 송가이족 언어의 ‘일레’와 같다. 꾸스꾸스의 아프리카 유래에 대한 상황적 증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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