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방탕/가사탕진 한달여행] #16. 누가, 왜, 돌에 페인트는 칠해갖고…

2015. 1. 27. 21:48호랑방탕 가사탕진 여행/바르셀로나+모로코 2014


1984년 벨기에 작가인 장 베라메가 총 18톤의 파란색 페인트를 

모로코 남부 안티아틀라스 산맥 발치에 위치한 도시인 타프라우트 외곽의 바위에 

쏟.아.부.었.다. 


라는 이야기와 몇 장의 사진을 보고는, 

아! 이런 대지미술! 보고 말겠어, 장엄한 대지와 그 위에 뿌려진 한낱 인간의 발버둥을 보고 말거야 

라며 타프라우트로 방향을 틀었다. 


철이 되면 아몬드꽃이 만발해 아름답다는 타프라우트는 6월 남모로코의 찌는 듯한 더위와 강렬한 햇살, 

흡사 발가락 양말을 닮은 선인장이 지천에 깔려 있는,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곳이었다. 


발가락 양말 닮은 선인장. 사실, 요즘 모로코에서는 실크도 뽑고 화장품도 만드는 매우 중요한 작물!


멀어서 문제지, 길이 의심스러울 때마다 요렇게 파랗게 칠해진 돌멩이들이 길을 알려준다 


파란 알리바바 옷에 빨강 터번을 두른 이스라 할배(론리 플래닛에 자기가 나왔다며, 니꺼 가이드북 펼쳐보라고 했는데, '저 가이드북 없어요' 하자, '노 플랜이야? 너 아티스트로구나!' 라며 격하게 반겨줬던...)랑 우리 숙소 웨이터 할배가 

페인티드 락(색칠된 바윗덩어리)까지 3km 밖에 안되니까 걸어가, 30~40분이면 충분히 도착해~ 라고 해서 

물 한 병 들고, 오렌지 사고, 우쿨렐레 등에 메고 걷기 시작했다. 

왠걸, 2시간 걸렸다... 

혹시 약도를 잘못 이해한게 아닐까 싶어 나무그늘 아래서 식사중이던 21세기 노마드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걱정말고 계속 쭉~ 가란다. 

"우리 좀 태워줄래?" 했더니 그럴 순 없고, 밥이나 좀 먹겠니? 라고 돌아오는 답.. 


이스라 할배가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며 그려준 약도.. 영화 <안경>을 생각나게 했던... 





여튼 2시간을 걷고, 이 길이 맞나 의심하고, 물어볼 사람은 없고, 친구는 높은 곳에 가서 파악해 보겠다며 산을 타고, 

이런 우여곡절과 함께 황량한 바위 사막을 계속 걸었다. 

안티아틀라스의 이편에는 뭉텅뭉텅 잘라놓은 지우개같은 바위들이 사막에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두고 있다. 

마치, 밤이 되면 무릎에 묻은 흙먼지 툴툴 털어내고 페인티드락 근처에 모여 불이라도 쬐며 반상회 할 것 같은... 

이 돌들은 어디서 왔을까. 어쩌다가 이렇게도 신비한 모습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된걸까. 

사실, 이 돌들은 계속 여기에 있었겠지. 

오랜 시간동안 이 자리에서 바위에 색칠을 하는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도 봤을거고, 

당나귀에 짐 싣고 오고가는 사람들도 봤겠지. 

신화의 시대까지 목격했겠지. 


목소리를 내는 동물은 나와 내 친구뿐인 사막 길을 걸어 페인티드락에 당도하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사실은 에너지)이 싹 사라졌다. 

고요한 그곳에서 우쿨렐레를 튕기며 내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엄청나게 넓은 공기 중으로 퍼뜨렸다. 


분홍 바위도 있더라. 파란색이 많이 지워지기도 했고, 어쩌면 우리가 진짜 페인티드락까지는 못 간 걸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