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방탕/가사탕진 한달여행] #18. 지금, 누가 9,501번째 골목을 만들고 있을지 모르는…

2015. 1. 27. 21:49호랑방탕 가사탕진 여행/바르셀로나+모로코 2014

에싸우이라에서 제멋대로 난 골목길을 걸으며, 길을 잃으며, 

계획도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또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가 서서히 확장되는 모양새가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제멋대로 길이 났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인 그런 모양새. 

1,200년전부터 시작된 메디나, 그 복잡하면서도 합리적인 골목이, 그래서 자꾸 도전!을 외치게 만드는 그런 길들이 페즈에 있다. 

9,500개가 넘는, 혹은 훨씬 더 넘는? 페즈의 골목골목을 반나절동안 전문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제기 만드는 골목. 각 산업별로 골목이 구분되어 있다


태너리


누가 함부로 페즈 구시가지의 골목이 몇개다! 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집 하나였던 공간을 집 두 개로 나누는 공사를 하고 그 사이에 다섯뼘 폭의 길을 닦고 있을 수도 있다. 

페즈 메디나에서 태어났다는 운전기사 모라드는 길이 막혀 보이는 작은 골목이더라도 집 안으로 들어가 2층을 통해 다른 집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다른 골목으로 연결된 길도 알고 있다하니 말 다 했다. 

한편으로는 이 얼마나 거주자 편의 도시인지! 

대강의 위치와 방향만 파악하면서 어두운 골목을 들어가보게끔 하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좁은 길의 마력이 있다. 

방향 감각만이 아니라 주요 골목길에서 조금씩 새어나오는 빛을 따라 가기도 하고, 골목 끝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길을 찾기도 한다. 

여기도 대도시니까 또, 사기꾼 많다고 현지인들도 조심하라고 했던 페즈니만큼 약간 간이 쪼그라들긴 하지만 골목의 마력이 나를 이끈다. 

"여기에 니가 찾는 그 길이 있어!" 


골목골목은 오랜 시간동안 장인을 키워냈고, 거래를 만들어냈다. 

둘레 17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메디나는 크게 케라완 지역과 안달루스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교역을 위해 튀니지와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온 아랍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면서 이름이 그리 되었다. 

메디나 안에는 중요한 건물들이 많다. 

예를 들면, 세계에서 최초로 세워진 대학이자 파티마 라는 여성이 세운 대학이 이곳에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태너리(가죽 염색 공장)도 이곳에 있다. 

네자린 광장에는 14~17세기까지 캐러반(대상무역상)들이 낙타를 타고와 교역할 때 머물렀던 숙박시설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곳곳에 다수를 위한 수돗가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름철마다 물이 부족하고 사하라 사막을 끼고 있는 나라에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물을 누군가 독점하지 않고 

공동의 소유와 공동의 재산으로 해두었다는 것. 

그 수돗가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해 둔 것이 볼 때마다 감동적이다. 


여전히 35만의 사람들이 좁은 길에서 복작거리며 길고 긴 인사를 나누고, 

관광객에게 환영한다는 말을 건네는(물론 삐끼도 많고..) 구시가지, 메디나. 

식물성 실크 골목에서는 장인이 실크를 손수 염색하고 있고, 

제사나 의례를 위한 동으로 된 제기를 만드는 곳에서는 유명하다는 장인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꼼꼼하게 완성품의 상태를 파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오직 관광객이 들어가서 구경할 때만 은상감을 하는 모습을 반짝 보여주는 쇼가 공존하는 곳. 

마치 승패가 이미 정해진 게임을 선뜻 권하듯, 흥정을 제안하는 곳. 


이 모든 삶의 장면이 9,000개가 넘는 골목을 따라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