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방탕/가사탕진 한달여행] #15.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 떠날 때를 결정하는 것

2015. 1. 27. 21:48호랑방탕 가사탕진 여행/바르셀로나+모로코 2014

밀레프트. 참 좋은 곳이고, 마음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곳이지만 

떠나야 하는 것이 여행자의 숙명이고, 그것이 또 인생이란 거겠지. 

매일매일이 페스티벌일 수도 없고, 

일상에서 감수해야 할, 감내해야 할 감정이 있기에 또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잠시 머무르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일 수 있겠지, 이 많은 사랑과 따뜻함은..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니까. 


집주인 압둘 : 너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꿈꿔본 적이 없어? 

나 : 있어. 예전에 시드니에 살 때도 '아.. 여기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시아 나라들을 여행하면서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압둘 : 그런데? 

나 : 그런데 딱 살게 될 일은 없네, 안생기네.. 

압둘 : 이제는 너가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종이에 딱 너가 뭘 하고 싶은지 계획을 적어볼 그런 때가 아닐까? 


그대로 멈춰봐! 하고 찍은 사진.. ㅎㅎ 


오후에 압둘라 둘(집주인, no.27)과 작은 해변에 갔다. 

모로코 청년들이 배구를 하거나 미니테니스, 축구를 하고 있던 그 해변에서 나도 그들과 함께 

프리즈비를 던지고, 달려가 받고, 모래 위에서 축구를 했다. 

처음 만난 하피와 친구가 되고, 요가를 하고, 게임을 하고. 

문득, 이렇게 살 수 있는데! 싶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처음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처음 만난 사람과 축구를 하며 

모래사장에서 뛰어다니며 이렇게 살 수 있는데, 

왜 그게 잘 안될까.. 

모래사장에서 해질녘 요가를 하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우쿨렐레를 치며 살 수도 있는데 말이다. 


밀레프트를 떠나기로 세번째 마음먹은 날(이자 밀레프트 6일차) 아침이 밝았다. 

2일 밤만 자려다가 어플리케이션 작동 실수로 3일밤이 되고, 하룻밤만 더 자겠다고 해서 4일밤이 되었다가 

집주인에게 말도 없이 하룻밤을 더 묵어 총 5박을 하게 되었다. 

조그맣지만 불편하지 않고, 무엇보다 친구들이 많이 생겨 이방인의 기분과 현지인의 기분이 적당히 섞여 즐거웠던 곳. 

단골 식당과 단골 카페도 생기고 아랍식 혹은 베르베르 식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했던 곳. 

한편으로는 이렇게 계속 있다가는 영영 떠나기 힘들수도 있겠다 싶었던 곳. 

그래서 여행자의 숙명, 떠나야 함을 계속 재촉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음 바뀌기 전에 짐부터 싸두게 만드는 곳. 


다시 올 수 있을까? 사람일은 어찌될 지 모르니, 일단 언젠가라도 다시 만나자, 돌아오겠다라는 인사를 하자. 

잠시만이라도 다시 만났을 때의 기분을 상상하며 행복해지자. 



단골카페 주인 빅브라더가 안계셔서, 감사카드를 남겨두고 왔다. 오른쪽은 웨이터, 자비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