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방탕/가사탕진 한달여행] #14. 이브라힘 할배네

2015. 1. 27. 21:48호랑방탕 가사탕진 여행/바르셀로나+모로코 2014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물고기 시장에서 해산물을 구입해 근처 식당에서 따진을 만들어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데나 가서 재료를 디밀고 만들어달라 그러면 되는건지, 재료는 무엇을 얼마나 사야하는건지, 채소 재료는 식당에서 제공해 주는건지 당최 아는게 없어 조개를 파는 아이들 앞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압둘라 no.27를 우연히 만났다. 조그만 마을이니 밖에 나가면 누구든 만나게 된다. 

"안녕~ 너 어디 갔다와?" 

"해변에 다녀오는 길이야" 

"서핑했어?"

"아니, 오늘은 수영만.." 

저녁에 한가할 게 틀림없는 압둘라에게 우리의 식사 계획을 말하고 끌어들인다. 

압둘라의 도움으로 홍합과 조개살을 500g 구입하고(각각 10디르함), 

바로 옆 채소가게에서 감자, 당근, 토마토, 파프리카를 10디르함 어치 구입해 

이브라힘 할아버지네 식당으로 갔다. 

재료를 넉넉하게 구입했으니 압둘라도 함께 저녁먹자며 쐐기 박기. 

 

사진 찍는다고 압둘라no.27이 썬글라스 빌려줌. 


                                          익히기만 하면 되는 따진에 토마토와 고추로 장식하기, 완성된 생선 따진! 





이브라힘 할아버지는 베르베르 말만 하신다. 단촐하게 갖춰놓은 이브라힘의 식당에는 오직 이브라힘 혼자서 정어리를 굽고 하리라(야채스프)를 끓이고 민트티를 만든다.  

예정에 없던 아스키프(베르베르식 수프)도 한그릇씩 뚝딱 해치우고 따진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이브라힘 할배를 돕기로 한다. 

당근과 감자 껍질을 벗기고, 조개살에 붙은 딱딱한 껍질을 떼고, 따진 냄비에 이브라힘 할배가 시키는 순서대로 재료를 담는다. 

'파티마 꾸스꾸스'와 '아이샤 따진'이라는 베르베르식 이름을 얻은 우리는 할배의 명령대로 

파티마는 재료를 냄비에 담고, 아이샤는 사진을 찍는다. 

모든 재료가 따진에 들어가자 토마토와 고추로 따진 냄비 꼭대기를 장식하는 귀여움을 발산하시는 이브라힘! 

수고했다고 민트티 한잔을 주신다. 민트와 브라질리를 물컵에 꽂아 테이블도 장식해 주신다. 

크고 크고 큰 따진 냄비에 많고 많고 많은 음식을 먹은 우리 셋은 

이브라힘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며 감사와 만족과 배부름을 표현하고 소화시킬 겸 동네를 한바퀴 걷기로 한다. 



압둘라 no.27에게 추우니까 옷 입고 올게, 이따 카페에서 만나 민트티 마시자~고 약속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알리를 만난다. 이따 민트티 마시러 카페로 와~라고 약속하고, 집 앞에서 집주인 압둘라를 만나 민트티 마시자고 또 약속하고..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오늘 이브라힘네서 저녁식사를 만들어먹은 이야기를 하며 이브라힘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더니.. 


집주인 압둘 : 너 이브라힘 이야기, 여행기에 쓸거야? 

나 : 응 

압둘 : 쓰지마~ 12년 식당 장사한게 뭐 오래된거라고.. 별로 멋지지 않잖아. 

나 : 12년이면 충분히 긴 시간 아니야? 

압둘 : 너네 나라에서나 그렇겠지. 모로코에서는 아니야. 


10년 장사는 얼마 안된 걸로 치는 이 친구들과의 저녁 티타임.. 


+덧. 그 이후부터 종종 이브라힘네 가서 식사를 했는데,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젠 막 가게가서 밀가루랑 우유 사오라고 심부름도 시키고, 옆 테이블 치우고 설거지하라고 하고, 옆 손님이 마시고 남기고 간 콜라를 우리에게 턱 주시고.. 며칠 더 있었다간 이브라힘 할배네 취직할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