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9. 20:21ㆍ호랑방탕 가사탕진 여행/지중해_여기저기
알바이신 지구를 거슬러 올라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올랐다.
(헤맸다. 결국 막판에 버스를 타고, 노 아블로 에스빠뇰(No ablo Espanol)인 나와 버스 기사님의 의사소통 불통으로 한 정거장 거리였을 뿐인 구간을 버스타고 이동..
사실은 헤맬 게 없는 거리인데, 여행길에서 만난 친구와 골목길 이것저것에 정신이 팔려 걷다보니 잃은 것...)
지중해의 햇살이 쨍한 이곳에서는 알함브라 궁전이 곱게 누운 모습이 보이고, 저 멀리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도 장관이다.
안달루시아의 3월 햇살과 하늘은 한국의 9월 같다.
바람은 선선하지만
태양은 강렬하고
하늘은 충분히 파랗다.
하얀 건물들이 햇살에 눈부시고 파란 하늘과 함께여서 더 빛난다.
산 니콜라스 광장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만든 물건들을 조그만 천 위에 깔아놓고 멀찍이 앉아 은실을 꼬며 새로운 악세서리를 만들고 있는 젊은 남자는 조금전까지 다른 아저씨와 계속 싸우고 있었다. 싸운다기보다 아저씨의 고성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자기 작업에 열중한다. 아저씨는 분이 안 풀리는지, 방향을 틀어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소리를 지르고, 다시 방향을 돌리고를 반복한다. 느즈막이 광장으로 들어오는 동료들에게 하소연을 한다. 사랑싸움인가? 아무도 이 싸움(아저씨의 화)에 개입하지 않고 그저 몇마디로 토닥거리며 아저씨 뺨에 입맞추고 오늘의 인사를 할 뿐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광장에 들어선 커플은 아기에게 고무공을 던져주고 광장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짧게 안부를 묻는 듯하고 양쪽 뺨에 입을 맞춘다. 그러곤 본인들이 판매할 악세서리를 펼쳐놓고, 막 노래를 끝내고 이들에게 다가온 청년과 대화를 나눈다.
큰 개와 함께 내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은 산책나온 동네 주민인 줄 알았더니 내 앞에 펼쳐진 그림을 그린 화가였나보다. 개가 광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다 싶으면 이름을 외쳐 불러들이고 쓰다듬고 놓아준다. 화가는 말도 없고 행동도 별로 없다. 그저 햇살을 등에 받아들이고 시선을 멀리 던져둘 뿐이다. 두 남자가 눈앞에서 말다툼을 할 때도 그저 묵묵. 한 남자가 하소연을 할 때도 어깨를 툭툭 쳐줄 뿐.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아저씨는 고궁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한국 아저씨와 어쩜 이리도 비슷할까. 샘플 사진들이 붙은 판넬과 카메라를 자기 목에 걸고 아마도 '즉시 인쇄'라고 적힌 글자 옆에 3유로 라고 적힌 곳을 가리키며 광장을 어슬렁거린다. 그래도 반경 10m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곳에 서 있는 거겠지?
캐스터네츠를 판매하는 할머니는 마치 조각처럼 벤치에 가만히 앉았다. 광장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다가와 인사하면 고개를 그들을 향해 약간 들어올리고 뺨에 뽀뽀하고 짧은 대화를 하고 다시 고개를 약간 내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가끔 한 손에 들려진 캐스터네츠를 부딪혀 소리를 내며 주의를 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핫초콜렛을 사와 마시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조금 늦게 광장에 합류한 악세서리 파는 상인에게 자기 자리를 조금 내어주며 인사를 한다. 오늘을 함께 살아간다는게 새삼 참 좋은 날이다. 어느샌가 나도 알함브라의 웅장함과 시에라 네바다의 아름다움에 등을 돌리고 이들을 바라보고 앉았다.
이렇게 오늘 나의 일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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