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9. 03:30ㆍ테투아니 in Morocco
물레이 이드리스와 볼루빌리스는 메크네스에서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메크네스에서 택시 한 대를 대절해 3~4시간 동안 두 곳을 다녀오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고요.
이 방법은 가장 편리하긴 하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단점이 있지요.
위의 일정과 시간으로 택시 한 대에는 주로 350~400딜함(약 5만원, 5-6명 정원) 정도 요구합니다.
저는 시간도 많고 혼자라서 택시보다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메크네스에서 물레이 이드리스까지는 15번 버스로 약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버스비는 7딜함(약 천원).
엘하딤 광장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왼편에 택시 정류장이 보이고 택시 정류장의 11시 방향이 버스 정류장입니다. 그냥 보여요. ㅎㅎ
버스는 모로코의 곡창지대라는 메크네스의 사이드 평원을 달려 물레이 이드리스로 향햡니다.
메크네스는 모로코의 농업중심지로 옛날부터 올리브, 포도, 복숭아, 사과, 감자, 양파 등 과일과 채소가 풍부하게 생산되는 곳입니다.
줄을 맞춰 심어진 올리브 밭을 쉽게 볼 수 있지요.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올리브 나뭇잎이 어찌나 예쁜지 볼 때마다 늘 '갖고 싶다, 올리브 밭...' 이라고 중얼거리게 됩니다.
더운 날씨에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달려서인지 버스에 탄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 합니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바닥에 짐을 깔고 앉아 연신 손부채질을 합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지만 바깥 기온 43도의 기운을 품은 더운 바람일 뿐입니다. 히잡에 긴팔을 입은 여성들은 얼마나 더울까 싶습니다.
제 친구 중 하나는 히잡에 익숙해져서 많이 덥지 않으며, 햇빛이 강할 땐 오히려 머리를 가리고 긴팔을 입는 것이 더 시원하다고 말하긴 합니다만,
전날 테투안에서 메크네스로 오는 길에 더위를 먹은 저도 괜히 겁이 나서 계속 입에 물을 머금고 있습니다.
그랑 테라스에서 본 물레이 이드리스. 녹색 기와 지붕 건물이 모스크
물레이 이드리스는 해발 530m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모로코 무슬림들에게는 성지로 여겨지는 곳인데,
선지자 모함마드의 직계 후손인 물레이 이드리스가 788년 압바시드 왕조의 박해를 피해 이곳까지 와 정착했고,
원주민들에게 이슬람교를 전파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모로코 땅에 이슬람교가 시작된 장소인 셈이지요. 또, 물레이 이드리스의 무덤이 있기도 하고요.
모로코의 모스크에는 카사블랑카의 하산2세 모스크를 제외하고는 비무슬림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곳의 모스크도 나무 보로 입구가 가로막혀 있고, 비무슬림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습니다.
비무슬림은 메디나 골목을 지나 15분 정도 걸어올라가면 도시의 전경을 볼 수 있는 두 곳, 쁘띠 테라스와 그랑 테라스에서 모스크의 구조를 살짝 볼 수 있습니다.
혼자 물어물어 테라스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우연히(상대방은 의도적으로 ㅎㅎ ;가이드를 자청하고 수고비를 받는 젊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내비라는 친구를 만나 안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저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복잡한 길이어서 내비를 만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지만 프랑스어를 못하는 저와 영어를 못하는 내비 사이에서의 대화는 참 웃긴 것이었지요 ㅎㅎ 그래도 보고 싶었던 원통형 미나렛까지 안내해주어 좋았어요.
미나렛은 모스크에 속한 건물인데, 탑처럼 생긴 것으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퍼지는 곳입니다. '모든 모스크에 미나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나렛이 있다면 반드시 모스크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모로코 친구가 얘기해 주더라고요. 특히 물레이 이드리스에는 모로코에서 유일한 원통형 미나렛이 있습니다.
왜 미나렛을 원통형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자료가 많지 않은게 모로코의 아쉬운 점 ㅠㅠ
왼:물레이이드리스의 원통형 미나렛 / 오:메크네스 마드라사의 실내
모스크는 동네에 자리한 작은 규모의 모스크였고, 미나렛은 녹색 타일로 장식된 것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아랍어로 된 구절이 여느 곳처럼 양각으로 조각된 것이 아니라 녹색과 흰색의 다른 색깔의 작은 타일로 글씨를 만들어 붙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디지털 숫자를 표기하듯! 그래서 양각으로 조각한 캘리그라프가 마치 붓으로 적은 듯한 부드럽고 자유로운 필체를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물레이 이드리스 원통형 미나렛의 아랍어 글씨는 좀 더 딱딱하지만 모던해 보인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용은 '알라가 유일한 신이시다'는 구절이라고 하네요.
마을의 입구로 다시 내려와 공립학교 앞 테라스에서 마을 전경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립니다. 한시간 동안 함께 해 준 내비(감사의 표시로 20딜함을 줬는데, 적은건지 충분한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비가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는 것에 저도 안심할 뿐)가 제가 볼루빌리스를 간다고 하니, 가볍게 '걸어가~'라고 말합니다. 이 땡볕에 도저히 걸을 엄두는 나지 않아 택시는 얼마냐고 물으니 50딜함 정도 할거라고 택시 정류장을 가리킵니다.
4-5km 정도 짧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을테니 택시 한 대 비용을 모두 낼 각오를 하고 볼루빌리스행 택시를 물어봤는데, 정가인듯 30딜함에 가자고 해 그랑택시에 올라탔습니다. 볼루빌리스에 도착하자 기사님이 제가 구경 마칠 때까지 기다려줄테니 물레이 이드리스에 돌아가는 것까지 총 100딜함에 하자고, 돌아가는 택시 잡기 힘들다고 영업을 하시긴 했지만... 거의 택시를 대절해서 오기 때문에 돌아갈 차량이 없을 것 같긴 했지만 정 안되면 걸어가야지 싶어서 거절했습니다. 다행히 자가용으로 야매 택시업을 하는 몇 분이 있어서 30딜함에 물레이 이드리스까지 어렵지 않게 돌아올 수 있었어요!
왈릿꽃잎이 바짝 말랐습니다. 볼루빌리스 입구에서는 한시간에 100딜함 정도에 가이드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2년 전 처음 왔을 땐 가이드 투어를 받았는데, 꽤 좋았어요. 오늘은 혼자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봅니다.
볼루빌리스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유적지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왈릴리'라고 부르는데, 협죽도와 비슷하게 생긴 꽃이 지천에 피어 있어 그 이름을 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나마도 강렬한 태양탓인지, 철이 지난건지 꽃잎들이 바짝 말라 있더라고요.
볼루빌리스가 로마 도시로 가장 번성했을 때는 주요 건축물인 바실리카, 신전, 개선문 등이 지어졌던 2세기 경입니다. 그 전에는 페니키아 인이 살았었고, 그보다 훨씬 더 전에는 신석기 시대 유물까지 발견되고 있고, 로마 이후에는 베르베르족이 살기도 했었고요. 워낙 이 지역의 토양이 비옥해서 주요한 올리브 생산지였기에 민족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인근에 끊임없이 살았습니다. 로마 역시 올리브 및 곡물 생산지로 볼루빌리스를 중요하게 관리했다고 합니다.
'곡예사/선수의 집' 운동선수가 당나귀나 말을 거꾸로 달리거나 뛰어넘는 곡예를 보여주는 당시의 경기로
모자이크에서 한 손에 트로피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승리자나 후원자의 집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복원을 거친 것이기는 하지만 색색깔의 모자이크가 아름답게 남아 있습니다.
다만, 땡볕에 가림막 없이 노출되어 있어 훼손되기 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오르페우스의 집' 목욕탕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타일로 해마가 끄는 전차를 타고 있는 암피트리테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그 외, 다른 물고기나 돌고래가 그려진 집이 많은데 당시 사람들에게 돌고래는 행운의 상징!
'오르페우스의 집'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모자이크로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하프 연주를 하고 있는 오르페우스
볼루빌리스의 메인 스트리트인 '데쿠마누스 막시무스' 도로.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카라칼라 개선문.
당시 황제인 카라칼라가 볼루빌리스 주민에게까지 로마시민권을 확장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네요
볼루빌리스 발굴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됩니다. 주로 프랑스팀에 의해 진행된 발굴 때 사용한 철길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볼루빌리스를 보는 즐거움은 허물어진 폐허 속에서 2천년 전 사람들의 생활상을 상상해보는 것에 있는데,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많은 것들이 남아 있어 여행자를 두근거리게 합니다. 부유한 저택의 바닥을 장식했던 색색의 타일,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던 바실리카와 신전, 포럼의 형태, 곧게 뻗은 대로 양편에 늘어섰던 상점들의 흔적, 목욕탕과 올리브 오일을 짜던 공간 등을 보며 사람들로 북적였을 당시의 볼루빌리스를 그려봅니다.
특히 타일은 개인 저택의 거실이나 목욕탕을 장식하던 것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길게 누워 식사를 하거나 목욕을 즐기며 아름답게 장식된 타일을 감상하던 것을 생각하면 참 풍요롭고 여유로웠구나 싶습니다. '비너스의 집' 이라고 불리는 저택에는 심지어 복도의 바닥까지 모두 타일 장식이 되어 있는 곳도 있습니다.
볼루빌리스에 가면 아쉬운 점이! 입구에 현대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있는데,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곳 내부에 볼루빌리스의 역사적 중요성 같은 내용과 발굴 유적을 전시해놓고(유적의 경우, 라바트의 고고학 박물관으로 상당수 옮겨져 있다고 합니다) 관련 책이나 엽서 등을 판매해도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역시나 입장료를 지금의 10딜함(1250원)에서 조금 더 높여 받아도 될 것 같고요. 예산이나 관리 등 쉽지 않은 문제이겠지요..
다음에 볼루빌리스에 다시 오게 된다면 좀 더 선선한 때 가서 스케치라도 하며 세월아 네월아 놀아보고 싶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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