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2. 03:50ㆍ테투아니 in Morocco
어떤 여행자가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종종 던지곤 합니다. 사실 살면서 질문이 많긴 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잘 하는 사람인지와 같은 명확한 답이 없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멍 때리며 혼자서 노는 시간들이 많아서인지 혼자 하는 여행도 심심하지만은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간혹 외롭기는 합니다만…)
어떤 여행자가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는 지난 15년간 이곳저곳 여행길 위에서 다양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는 ‘최소한의 짐을 가진 여행자’가 되고 싶다 했고, 사마르칸트 사막을 지나면서는 ‘매순간 최대한의 진심을 가진 여행자’가 되고 싶다 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땐 ‘친절이라는 종교를 믿는 여행자’라고 답했고요. 가장 최근의 답은 ‘최소한의 편견을 가진 여행자’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얼마만큼 자랐을까? 라고 되돌아볼 때 가장 크게 부딪히는 순간은 여전히 편협한 시각을 가진 여행자인 자신을 만날 때입니다. 편견과 무지몽매함을 완전히 떨쳐버린다면 성불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최소한 of 최소한 of 최소한의 편견만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도 가능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어떤 지역을 먼저 여행한 여행자로서 다른 여행자와 나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최소한의 편견을 가진 여행자’로 참여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서론이 장황한 이유는 히잡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한국 사람치고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접하는 많은 이슬람 관련 뉴스는 서구 중심적인 가치판단과 사고로 필터링된 것이 많은 것이 주요한 이유이겠지요. 물론 저 역시 궁금하다는 것에 비해 깊게 무슬림이라는 종교를 파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꽤 객관적으로 쓰인 이슬람에 대한 책을 읽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무슬림을 만나고 친구가 되어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보고, 삶에 녹아든 종교를 곁에서 지켜보고 하면서 편견을 한꺼풀 걷어버린 정도랄까요. 하지만 국민의 대다수가(통계자료로는 90%라고 합니다) 무슬림인 모로코에 살고 있으면서도 문득문득 스스로에게 놀라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슬람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편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날 때 입니다.
왜 다른 종교처럼 이슬람을 대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를 믿는 이에게 주어지는 절제와 겸손의 의무가 무슬림의 것이 되면 억압으로 비춰지는 걸까요? 왜 히잡은 절제나 겸손, 성실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보지 못하는 걸까요? 사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 중 히잡 착용이 법으로 명시되어 있는 나라는 단 두 나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히잡이나 온 몸을 덮는 부르카 착용을 강요당하는 무슬림 여성이 분명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억압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도 있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모든 히잡 착용 무슬림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히잡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요. 히잡을 둘러싼 편견으로 세상의 모든 히잡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자는 말입니다.
모로코의 이슬람은 다른 나라의 이슬람에 비하면 유연한 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종교라는 것이 원래 각 지방의 풍습과 문화와 만나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지요.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아프리카의 끝자락에서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가 끊임없이 뒤섞였던 모로코에서는 종교 뿐 아니라 언어, 문화가 모두 경직보다는 유연을 선택하기 쉬운 상황이었다고 생각도 됩니다.
히잡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공존합니다. 젊은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고 거리를 다니는 것에 대해 연세 있으신 아주머니가 대놓고 뭐라 하는가 하면(매우 드물지만 없는 일도 아닙니다), 모녀가 나란히 히잡 없이 길거리를 활보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곳이 모로코입니다. 군인이나 경찰이 되려면 반드시 히잡을 벗어야 하는 곳이 모로코이기도 하고요. 가족 중 누군가 쓸 것을 강요해서 히잡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어렸을 때 한 번 히잡을 써보고 예뻐서, 자신에게 잘 어울려서 계속 히잡을 쓰는 사람들도 있고요. 가족 중 아무도 히잡을 쓸 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본인도 종교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히잡을 사용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다양성과 개인적인 선택을 비교적 존중하는 모로코이기에 히잡을 쓴 여성들을 보며 제가 즉각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동그란 머리 형태가 잘 드러나게 색색깔의 스카프로 묶는 모양새가 단정하고 아름답습니다. 히잡에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아름답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문득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이라면 히잡이 단지 이슬람이라는 종교만 표방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으로 매일매일 매만지는 무엇인가가 아름다운 것은 매순간 정성이 불어넣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매일매일 손이 가는 어떤 것에는 무의식적으로 좀 더 나은 것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시도가 부여되기 쉽다고도 생각합니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라고도 봅니다. 인도를 여행할 때 봤던 시크교도들의 터번 역시 감탄이 나올만큼 아름다웠던 기억이 납니다. 셔츠의 색깔과 터번의 색을 맞춤하는 센스는 히잡의 색깔과 젤라바(원피스형 옷)나 가방 등의 색깔을 맞춤하는 센스와 기본적으로 닿아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자신만의 히잡 모양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두르는 방향이나 횟수에 변화를 주어 단순한 사각형의 천으로 다양한 모양의 히잡 형태를 시도해보는 것이지요. 여러 겹의 천을 사용해 색깔의 조화를 시도해보기도 하고요. 패션의 측면에서는 요즘 모로코에서 터키 스타일의 히잡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드라마나 음악, 영화 등도 터키에서 만들어진 것이 한창 인기가 많다는데 대중문화와 더불어 히잡의 패션적인 측면까지 영향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히잡을 그저 억압의 키워드로만 읽기에는 그 이면에 품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위키피디아에 각 나라의 히잡과 관련된 이슈를 정리해 놓은 정보가 있어 재미삼아 번역해 보았습니다(개인자료용이라 오역과 실수도 있을거예요). 관련 기사들은 번역하지 않았는데,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기사까지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예뻐서 히잡을 한 번 시도해봤는데, 영 안어울리는 얼굴도 있더라고요…
+위에서 계속 언급한 히잡은 머리만 가리는 스카프형부터 머리와 목, 가슴께 까지 가리는 숄까지 두루 말합니다.
'테투아니 in Morocco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말나들이 @물레이 이드리스 & 볼루빌리스 (0) | 2016.07.29 |
---|---|
주말나들이 @메크네스 (0) | 2016.07.29 |
라마단과 썸머타임 (1) | 2016.06.04 |
라마단을 달콤하게 하는, 슈바키아 (0) | 2016.06.02 |
금요일엔 역시 꾸스꾸스! (0) | 2016.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