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3. 19:06ㆍ생활여행자의 일기
생활여행자의 일기
어영부영 자그레브에 왔다.
원래 출장 다니는 지역이 아니라 어리버리, 마음만 급한 채로 도착한 곳.
아침에 여유가 있어 조식을 먹고 숙소 근처 돌라치 시장엘 갔다.
1918년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면서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큰 시장이 필요하게 됐고, 유럽 다른 지역의 시장에 대한 사전 조사를 마친 후 1930년 드디어 열게 된 시장이 바로 이 돌라치 시장이다.
초기에는 물건을 판매하는 여성, 쿠미체(kumice)가 사람들의 빨래도 해줬다고 한다. 물건 팔 때 사람들이 빨래를 맡기면 깨끗하게 빨아다가 다려서 다음날 아침에 갖다주며 돈을 받았다는 거다. 시장 초입에 서 있는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성분 조각상이 당시의 팍팍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힘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짠하다.
아침 8시에 간 돌라치 시장은 이미 빨간 파라솔을 단 판매대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고, 주민들-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채소나 과일, 꽃들을 구입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틈에 스리슬쩍 끼어들어 나도 이것저것 잔뜩 장 보고 싶은 마음이다. 다들 단골집이 있겠지, 가족의 안부를 묻고 일상사를 나누는 사이겠지, 싶다.
시장 근처의 카페에서는 신문을 읽으며 커피 한 잔을 하는 사람,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마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가는 사람들로 골목길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고, 여행자는 캐리어를 끌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는 듯 하다.
성모마리아가 모셔진 길가의 예배당, 스톤게이트는 아침의 분주한 발걸음도 멈추게 하는 곳. 지나가던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잠시 서서 일상의 바람을 마음으로 빌어본다. 벽에는 사람들이 헌정한 듯한 돌판이 빼곡한데, ‘감사하다’라는 뜻의 크로아티아어 ‘흐발라 hvala’가 빠짐없이 적혀 있다.
일상에 감사하다 라는 말로 읽힌다.
일상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행복한 인삿말이 아닐까.
가장 겸손하고도 풍요로운 감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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