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6. 08:07ㆍ생활여행자의 일기
생활여행자의 일기 03.
아슬아슬한 길이 절벽에 기대 나 있다
수백마리의 양떼와 진짜 양치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수년간 안전의 문제로 출입금지였던게 이해가 되는 곳. 지금은 안전해요~
시작은 늦잠이었다. 8시 30분에 집에서 나가기로 했는데, 우버를 불러 탄 시간이 이미 9시. 말라가 기차역에 도착해 엘 초로까지 가는 표를 달라 하자 직원의 대답 "No Train" 왓? 다급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버스터미널로 간다. 엘 초로까지 가는 버스 어디 없나요, 묻기를 서너번, 엘 초로까지는 안가지만 알로라까지 가는 버스가 11시에 있다는 대답. 내 친구와 나의 까미니또 델 레이 입장 예약은 1시와 1시 30분이라 11시 버스는 너무 늦을 것이다.
어제 미카엘이 C2라는 기차 라인이 알로라까지 간다 했던 것 같은데 싶어 C2 역인 센터몰까지 걷는다. 전철역처럼 생긴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직원 아저씨에게 묻는다. "우리 까미니또 델 레이 가려고 하는데..." 그러자 게시판으로 우리를 데려가며 보여준 안내지에는 대각선으로 빨간 줄이 쭉 그어져있고... 까미니도 델 레이를 가려면 여기서 알로라까지 C2를 타고 버스를 타고 이렇게 저렇게 가야 한다는 안내문이었고, 비 때문에 철로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빨간 줄이 그어진 이유를 직원분은 설명을 해주었다.
이렇게 된거, 아침밥이나 먹자.
또르띠야, 샌드위치에 커피를 먹으며 방법을 의논한다. 11시 버스를 탈까? 너무 늦을텐데... 아예 오늘 하루 차를 렌트할까? 국제면허증 집에 두고 왔는데...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싶어 11시 버스를 타기로 한다. 화창한 안달루시아의 일요일 아침. 버스는 시골 동네를 순환하는 것같이 구불구불한 2차선 길을 달려 어르신들을 한 명 씩 내려주고 또 한 명 씩 태운다. 올리브나무와 오렌지나무가 적당히 심어진 풍경을 배경으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백 명은 본 것 같다. 에고, 이 오르막은 너무 힘들겠다, 자전거 옷은 왜 항상 저런 디자인이지? 주머니가 등에 달려있어~ 같은 이야기를 친구랑 나눈다.
알로라에 12시에 도착. 도착하면 바로 엘 초로가는 버스가 있을 줄 알았으나 버스터미널도 아닌 그냥 정류장일 뿐이다. 어찌저찌 원형교차로 근처에서 엘 초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으나 다음 버스는 오후 3시에 있단다. 어쩐다...? 그냥 엘 초로 방향으로 걷기나 해보자. 걷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인데다, 할 수 있는게 그것뿐이어서 그냥 걸었다. 지나가는 친절한 아주머니가 엘 초로까지 13km나 된다며 걸어가는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하자 노부부가 탄 차가 선다. 우리는 기대감을 잔뜩, 노부부는 친절을 가득 담아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오고간다. 그라시아스. 알고보니 노부부는 바로 근처가 목적지.. 몇 번의 차를 보내고 드디어 한 부부의 차를 얻어탔다. 휴가중이고, 마침 머물고 있는 집이 엘 초로이니 태워주겠다고 한다. 만세!
네덜란드 로테르담 근처 시골 마을에서 온 부부는 올 한 해가 너무 바빴다고 한다. 일도 많았고, 이사도 했고, 정신없었던 한 해의 마무리를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보내고 싶어 엘 초로에 왔단다. 햇빛 아래에서 책을 읽다가 근처 마을들을 둘러보는 날들을 계속 보낼 예정이다. 묵고 있는 숙소도 언덕 위에 단 한 채 있는 집이라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그런 조용함, 평화로움이 우리가 원하던 것들이야"
일은 하지만 한가로운 편인 나는 문득, 그들이 바쁜 일상 끝에 결국 가진 평화로움이 얼마나 소중할까, 그 느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조금 부럽네 하고 생각한다. 엘 초로 기차역까지 부부의 차를 타고 왔다. 고맙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 까미니또델레이도 한 번 찾아봐라 등의 인사가 오고가고,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러 걸어갔다.
입구까지 데려다주는 셔틀버스는 1인당 1.55유로, 버스에서 내려 20분 정도를 걸어가야 까미니또델레이 트레킹 길의 입구가 있다. 도착하니 오후 2시. 직원을 붙잡고 우리 예약이 1시, 1시 30분인데 들어가면 안될까? 사정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티켓의 코드를 스캔하더니 아무말 없이 들어가란다.
까미니또델레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걷는 절경과 수백마리의 양과 염소떼, 머리 위를 쉼없이 날아다니던 독수리들, 이 험한 곳까지 와서 길을 내고 기찻길을 뚫었던, 수력발전소를 만들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노동의 현장 등 많은 것들이 이미지로 남는다. 길은 5km 정도로 길지 않아 트레킹은 2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입구까지 5시간 걸린 걸 보상이라도 하듯 3시간동안 느긋하고 여유롭게 길을 걸었다.
까미니또 델 레이의 직원들이 모두 6시에 엘 초로 역에서 말라가까지 가는 기차가 있다 해서 그 말만 믿고 느긋하고 여유롭게 길을 걸었다. 햇빛도 좋고, 양떼들의 종소리도 기분 좋았고, 300m 멀리에서 봤지만 막대기 하나 들고 작은 배낭 하나 메고 개들과 함께 다니는 진짜 양치기도 봤다. 독수리가 바람을 타며 날아다니는 모습은 정말 멋졌다. 만족스럽게 걸었다 싶은 마음으로 엘 초로 역에 돌아와보니 6시 기차는 없었다. 하하하
마침 출근하는 여자친구를 데려다줄 계획인 트레킹 가이드의 차를 얻어타고 그의 개 셰퍼드 '라'의 큰 얼굴 바로 옆에서 라의 침이 떨어질까 경계하며 말라가까지 돌아왔다.
* * *
까미니또 델 레이는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개별입장과 가이드입장으로 나눠서 예약할 수 있다. 현장 판매를 100매 정도 한다고도 한다. 표를 사전에 샀어도 당일 날씨가 안좋으면 입장이 모두 취소될 수 있다. 말라가에서 오고가는 방법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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