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7. 07:10ㆍ생활여행자의 일기
아침에 눈을 떴는데 햇빛이 너무 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짐들을 캐리어에 쏟아붓듯 넣고
체크아웃도 제대로 하지 않은채 룸키만 리셉션 데스크에 올려두고 공항으로 달렸다.
출발 삼십분을 앞두고 직원은 “미안한데, 너무 늦어서 짐을 실을 수가 없어” 를 “플리즈”를 자동발사하는 내 말에 대한 대답으로 말했다.
최대한 가까이라도 가자.
마드리드까지 간 다음에 생각하자싶어 한시간 반 후에 출발하는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세수도 양치도 하지 않은채, 호텔방에 두고 온 물건이 분명 있을것이다 생각하며 그렇게 비엔나에서 마드리드로 출발했다.
그래도 많은 도움이 있었다.
트랜스퍼 시간이 짧은데 도움을 줄 수 없냐 했더니 기꺼이 앞자리로 좌석을 안내해준 스튜어디스 언니, 모닝콜을 깜박한 죄책감에 취소 수수료와 전화번호 등을 카톡에 남겨두고 잠든 친구까지.
마드리드는 선선했다. 산책이든 조깅이든 여행이든 무엇을 해도 좋을 날씨의 마드리드. 마드리드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오늘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친구를 만났다. 일로 만났지만 친구가 된 사이. 허술한 이성의 관계보다 단단한 친구사이이고픈 사람. 왠지 마음이 편해져 별 얘기를 다 하게 되는 사람. 가끔 내 말을 안듣는 것 같은 때가 있는데 그래서 더 편한 친구.
푸짐한 갖가지의 해산물을 먹고 와인을 마시고 얘기를 했다. 어릴 때 키우다 죽은 병아리부터 최근의 일 얘기까지, 질문을 던지고 듣고 말을 이어갔다. 시시콜콜 모조리 기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도 더러 있었다. 40 대 60 비율로 내향적이면서 외향적인것 같다 말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너무 중요하지만 외로운건 싫다고도 했다. 그렇게 저녁을 보냈다.
모로코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다행히 놓치지 않았다. 두번 연속 늦잠은 없다. 다만, 비행기 표값의 두배에 달하는 비용을 부치는 짐 하나에 썼을 뿐이다. 돈의 가치가 실감이 나지 않을만큼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돈을 뽑아 지불을 했지만 영 감이 없다, 지금까지도.
비행기에서 복도 좌석에 앉은 모로코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쪽 자리로 들어가려는데 습관적으로 할머니 어깨를 살짝 잡았다. 그순간, 모로코로 돌아가는구나를 실감했다. 모르는 사람과 이 정도의 스킨쉽이 불편보다 다정이나 배려로 여겨지는 곳으로 가고 있다.
집에 돌아와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늦잠을 자서 손해를 본건 돈 뿐이었다. 돈을 왕창 날렸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그리 했다. 짐값을 지불할 때 그 공항직원에게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됐을 일이었다. 그게 좀 후회가 될 뿐.
지금껏 두고온 물건은 생각나지 않는다. 발견하지도 못했다. 두고왔다면 여기 없을테니 발견은 말이 안되고, 기억해내야 하는데 기억하지 못하는걸 보니 아마 모조리 챙겨왔거나 별로 중요한 물건이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늦잠을 자면 먹게되는 음식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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