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수리야더르슨, 태양을 바라보다

2013. 4. 24. 00:54아시아_공부하고 일하고 여행한

성년의 날이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년의 날이 크게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 것도 같다. 20세가 되는 후배들에게 1,2년 선배가 해주는 이벤트 아니면 향수나 꽃다발, 지갑 등의 선물로 성인이 되었음을 축하받는 날 정도일까? 성년의 날 운운하며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구태의연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나의 성년의 날 역시 왜 축하 받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게, 빨간 날이 아니어서 의미가 바랜것 같은 잊혀진 기념일 정도로 지나간 듯 하다. 문득 성년의 날을 떠올리게 된 것은 작년 이맘때쯤, 출장 차 네팔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참여했던 한 여자아이의 성년식이 생각나서이다. ‘태양을 바라본다라는 의미의 수리야 더르슨이라는 성년식의 주인공이었던 그 아이, 언줄리는 며칠 째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고 빛도 보지 못한 채 성년이 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대개 한 나라 출신 사람들의 생김은 비슷비슷하여 국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네팔 사람들은 그 기준이 보통보다는 폭넓은 듯 하다. 인도 사람처럼 부리부리하게 생긴 네팔인, 동남아 사람처럼 동그란 눈을 가진 네팔인, 중국 사람처럼 생긴 네팔인,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눈이 옆으로 긴 네팔인 등. 이렇게 다양하게 생긴 네팔인 중에 우리와 비슷한 듯 친근감이 드는 네와르족 네팔인들이 있다. 연중 다양하게 진행되는 민족 행사와 특이한 재료를 사용한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네와르 족은 네팔 인구의 약 6%를 차지하며 소수민족 중 여섯번째로 많은 수의 인구를 자랑하는 민족이다. 마침 내가 네팔에 있던 때에 네와르족의 한 여자아이가 성년의 날을 맞았고, 당시 함께 일하고 있던 네와르족인 지인이 현지의 문화를 봐야하지 않겠냐며 감사하게도 초대를 해준 것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택시를 타고, 골목길을 걷고, 마중 나온 네와르족 주민분의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드디어 주인공의 집에 도착하자,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 모여 잔치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 눈에 먼저 띄었다. 주인공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 남자는 안되고 여자만 따라오란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불도 켜지 않고 창문에 커튼도 드리운 어두운 방에 그날의 주인공인 언줄리가 언니, 고모, 등 친척 여자어른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었다. 네와르 족의 성년식은 태양을 바라본다라는 의미처럼 태양을 보는 순간이 클라이막스이다. 언줄리는 그날로 12일동안 태양을 바라보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기간 동안에는 태양을 직접적으로 쳐다볼 수 없고, 머무르는 방도 커튼으로 빛을 가려 어둡게 하고, 남자들을 볼 수도, 남자들이 주인공을 봐서도 안된다. 가족일지라도 남자형제나 아버지는 언줄리를 볼 수 없다. 장장 12일 동안 언줄리는 부모님의 품을 떠나 어둠 속에서 자신을 끝없이 만나며 태양을 보는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이 어둠이 끝나는 날, 수리야 더르슨의 경험을 이미 치룬 여자 친척들은 언줄리를 아름답게 치장하는데 온 정성을 쏟는다.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지고, 전통 드레스를 예쁘게 입히고, 신발을 신긴다. 아마 지난 수백년동안의 수리야 더르슨의 날,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되었을 것이다. 예쁘다, 넌 소중하다는 마음을 손끝에 담아 수리야 더르슨의 선배가 후배에게 전달해주는 공동체의 문화는 그 어둠 속에서 조용한 감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치장을 마친 소녀는 햇빛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린 채 수리야 더르슨의 순간을 맞게될 옥상으로 향한다. 이미 옥상은 언줄리의 빛봄의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다. 언줄리가 신에게 예의를 갖추고, 고개를 들어 가리개를 벗고 태양을 보는 순간,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환호와 박수로 그 순간을 아낌없이 축하한다. 그 전까지 옥상에 흐르는 그 긴장이란. 태양을 보는 단순한 행위일 수도 있는 그 순간에 누구도 입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언줄리의 성장을 축하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한 마음이 흐른다.












언줄리가 태양을 보고 난 후는 축제 분위기이다. 직접 담근 술과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서로 권한다. 예쁘게 치장한 언줄리에게 덕담을 건네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나는 그곳에서 공동체가 아직 기능하는 집단이 성년의 날을 공동의 육아, 공동의 기쁨, 공동의 나눔을 이루는 축제로 만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단 하루를 기점으로 철없던 아이가 갑자기 사회가 바라는 성년이 될 리는 없겠지만, 언줄리는 그날의 경험으로 적어도 그 공동체 안에서만큼은 부쩍 컸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진 기념일 정도로 기억되는 성년식을 치른지 10년이 훌쩍 넘은 나는 수리야 더르슨을 떠올려보며 축하해줄 예비 성년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단지 몇년일지라도 그의 성장을 내가 지켜보았다면, 내가 성장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을 그의 성년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정성을 다해 나의 경험을 더해 그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고, 그가 새로운 빛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는 그 순간을 환호하며 박수로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