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31. 09:17ㆍ호랑방탕 가사탕진 여행/요르단 2019 크리스마스
국제운전면허증이 한달전에 만료되어 운전을 할 수 없었던 나 대신 일정 내내 운전을 도맡아한 일행이 어제 즈음부터 힘들어한다. 피로도 쌓인데다 양치기 개가 차를 가로막질않나(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개들을 만남.. 양이 차에 치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비도 내리고, 사해부터 암만 인근에는 차량도 많아지는 등 엎친데 계속 뭐가 덮쳤기 때문. 그래도 제라쉬는 가고 싶어! 이탈리아 밖에 남아 있는 로마 유적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곳이라는 설명 한줄만으로도 반드시 보고싶은 동네였다. 나중에 얘길 하며 알게된 사실이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일행이 별로 관심없는 지역인데, 암만에서 한시간 거리인 곳을 비오는 날에 운전하게 해서 굳이 가는거 아닌가 하며 눈치를 봤(나? 눈치보면서도 가자고 주장함 ㅎㅎ)고, 일행은 내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 쉬고 싶어하는거 아닐까 하고 걱정을 했더라. 여튼 둘다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었고 잘 다녀왔다 싶은 곳이었다.
제라쉬는 과연 로마 도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물론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졌지만 카르도 막시무스(남북대로)와 동서대로가 그대로 남아 있고, 도시의 중심인 타원형 광장도 그 규모를 파악할만큼 남아 있어 상상력만 조금 보태면 도시의 크기와 분위기를 그려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의식을 한 후 공생애의 8개월 남짓 지금의 요르단 땅에 있었고, 그때 이 제라쉬도 거쳐갔다고 하던데 예수님은 활기가 넘쳤던 이 도시를 봤겠구나 싶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 거리를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혀가며 걸었을 2천년 전의 사람들을 상상해본다.
*제라쉬 사진 추가*
살짝 비가 내리는 제라쉬를 둘러보고 암만으로 돌아와 시타델에 오르자 후회가 밀려왔다. 왜 내일 떠나게 일정을 잡은걸까.. 암만을 왜 더 여유를 두고 볼 생각을 하지 못한걸까! 이만큼이나 가슴 두근거리는 도시 풍경을 본 적이 있던가? 로마처럼 7개의 언덕으로 둘러싸여있는 도시는 많다. 로마의 영광을 닮고 싶어서 7개 언덕으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것을 많은 도시들이 강조한것도 같지만, 다들 그 언덕이 만들어낸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7개 언덕의 도시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도 아름답긴 했지만 역시 7개 언덕 도시 암만은 뭔가 달랐다. 감탄이 멈추지 않았다. 조밀하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언덕의 경사면을 가득 채운 모습이 이곳에 좀더 머물며 이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저 얽힌 길들과 조밀한 건물들이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저런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일텐데, 사람들의 소음을,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는 왜 내일 새벽에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한 것일까;
왜 암만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한 블로거들은 없었던걸까, 내가 못본걸까? 아쉽기만 했다. 아쉬움이 극에 달했을땐 요르단은 암만을 봐야 진짜일거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저 골목골목을 걸어야 암만의 비밀을 만나고, 요르단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내 렌트카를 타고 다니느라(운전도 안해서) 엄청 편하긴 했지만 요르단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것 같았던 허기를 암만만이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20년전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탑승한 귀국 비행기에서 '평생 여행자로 살거야'라고 다짐했던 흥분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암만이 운명의 도시인듯 심장이 잔뜩 뛰었으나 결론은? 예정대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모로코로 귀국했다. 수중에도 통장에도 현금이 없었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고, 멀지 않은 때에 이스라엘이나 이집트에 여행갈테니까 그때 다시 암만엘 와야지 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이십년간 여행을 하면서 '다음에 와야지' 했다가 다시 간 곳은 몇군데 없지만 그래도 강렬하게 다시 꼭 오게 될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날 격하게 아쉬움을 안겨준 암만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요르단 여행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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