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2014. 2. 10. 00:47잔상들 (책,영화,전시 등)

















*표지 다양한 버전 



노인은 소설을 읽는다. 
자신이 가보지 않은 곳, 해보지 않은 사랑을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하게 접하고는 자기 식대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보기에 노인의 해석과 이해는 재미를 주고, 순수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가령, 어릴적 봤던 솜털 같은 산봉우리의 눈을 기억하는 노인에게 소설 속에서 눈을 밟는 주인공들은 파렴치한이라고 느끼는 것 같은. 
노인은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이해를 해 가며 소설을 읽는다. 


문명과 야만
우리가 이 둘을 분류할 능력이 있거나 자격이 된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지도 모른다. 
문명의 완장을 찬 증기통은 저급하고 야만적인 인물의 표본이다. 
그가 하는 일 모두가 쓰잘데기 없거나 위험하거나 야비하고 따라서 야만적이다. 
야만의 기억을 가진 노인의 삶과 판단은 현명하고 통찰력있다. 
생명의 평등함이 살아있는 밀림에서 소위 '문명'은 얼마나 무능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생명의 평등, 순환
밀림에서는 생명은 한 생명을 먹이며 생을 다한다. 
서로 먹고 먹히는 순환의 자연스러움이 일어나기에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생명의 마지막 의무이자 권리로 설명된다. 
그 평등의 순환이 문명의 이름을 앞세워 야만을 정복하려 한 이들에 의해 깨지면서 
생명의 마지막 의무이자 권리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불안과 복수의 결과물인 참혹한 죽음이 생겨난다. 
살쾡이의 마지막 권리를 지켜주고자 노인은 총을 든다.  


양키도 노인도 모르는 세계에 대해 자기 선입견과 방식대로 접근하는데, 
노인의 소설 읽기는 이토록 아름답고 양키의 밀림 탐욕은 죽음을 부른다.
밀림은 수백만년간 그래왔듯 죽음을 생명으로 순환시키는 자기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자연은 수백만년간 그래왔듯 자연스럽게 반응을 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게 재앙이든, 살쾡이의 광기이든 결국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 인간의 입장일 뿐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