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아암의 길 _백련사 템플스테이 1박 2일

2010. 12. 3. 16:38생활여행자의 일기


서울에서 강진까지 고속버스로 다섯시간, 약 370km 의 길을 내려간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다산과 아암의 길' 
유배시절 아암 혜장스님과 우애를 다졌던 다산 정약용이 걸었던 길을 걸어보러, 
또 백련사에서의 1박 2일 템플스테이로 불교문화를 체험해보러 떠난다. 



다산은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18년 동안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 그 때 아암 혜장스님이라는 분과 친분을 쌓게 된다. 
다산과 아암은 종교나 배경은 달랐지만 둘이 주고받은 서신을 보니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고 의지했던 듯하다. 
차(茶)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다산은 아암과 주고받은 서신에서 차를 달라며 조르기도 하고, 
차를 보내주지 않는다며 아암에게 서운함도 표현한다. 
200여년 전의 학자와 스님이 주고받은 서신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니 왠지 정이 간다. 
서신을 모두 찾아 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1박2일 동안의 이번 일정에서 좋았던 것을 꼽아보면.. 

* 백련사에서의 1박 2일 
백련사는 강진 앞바다 구강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진 절로 만덕산에 있어 만덕사로고도 불린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지어졌는데, 조선시대 효령대군의 불사가 절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백련사에서의 템플스테이는 다른 절에 비해 조금 여유로운 편이다. 
보통 절에서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하는데, 백련사는 4시 반에 스님의 목탁소리가 숙소를 돌며 아침을 알린다. 새벽예불과 아침 명상을 마치고 아침공양. 그리고 함께 하는 운력. 
운력은 구름같이 함께 모여 힘을 보탠다는 의미인데, 마당쓸기, 대웅보전 청소 등 
일상의 업무도 수행이 되는 시간을 갖는다. 

1박 2일 일정동안 함께했던 백련사의 일담스님이 첫째밤에 직접 대웅보전 내부 벽화를 설명해주셨다. 
내부 조명을 끄고 손전등으로 그림 하나하나를 비춰가며 구석구석에 그려진 작은 그림까지!  
대웅보전 건물 전체를 극락으로 가는 배처럼 여겨 안과 바깥의 보는 모두 용으로 조각되어 있다. 
불교경전을 바탕으로 그려진 내부벽화는 딱딱한 교리가 아닌, 당시 그렸던 사람들의 유머와 재치도 엿볼 수 있음에 
재미가 더해졌던 벽화설명시간이었다. 

일담스님 


* 첫째밤. 어울림의 시간. 
일담스님께서 다산과 아암의 교우에 관한 이야기를 PPT자료와 함께 설명해주셨다. 
이후, 여행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스님들이 직접 만드신 떡차를 나누어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주지스님께서 아궁이불에 직접 구운 고구마와 귤을 잔뜩 내어주셨고, 
감사히 먹으며 여행자들은 서로 통성명도, 오늘 일정에 대한 이야기도, 다산과 아암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즐겁게 나누었다. 

떡차는 보이차와 비슷한 것이라 하셨는데, 보통 차와 달리 투명하지 않고 약간 탁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그 맛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풍부하면서도 깔끔한 맛! 
따뜻한 아궁이불 옆에서는 절에서 함께 살고 있는 백구인 정진이와 두 새끼, 산과 바다가 차분하게 앉아 있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 은하수도 보일랑말랑. 
강진포에서는 고기잡이 배에서 밝힌 조명이 반짝이는 밤이었다. 

이분은 주지스님 아니고요 ^-^; 

*여성학자이신 가배울 김정희 선생님의 새로운 해석
김정희 선생님은 불교와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셨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무위사와 백련사에서 볼 수 있는 
불교의 보살상이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여성성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모든 문명이 가지고 있는 지모신에 대한 이야기가 각기 다른 배경의 종교와 문화에서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그래서 우리는 불교 벽화나 석조입상을 보고 여성성과 관련된 어떤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는지.. 등 
잊어버린 신화, 잊고 지낸 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가는길, 동백나무 군락지.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가는길은 빠른 길로 약 20분, 그러나 일담스님의 안내로 숲길로 에둘러 걷기로 했다. 
우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숲을 지나 야생차나무를 곁에 두고 걷는다. 
동백꽃은 좀 더 있어야 피지만, 볕 좋은 곳엔 이미 몇 개의 빨간 꽃눈이 보인다. 짙은 녹색의 반짝반짝한 잎과 잘 어울리는 색이다. 
조금 걷다 보니 시선 아래쪽에 펼쳐진 동백나무의 반들한 잎이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 눈이 부시다.   
일부러 낸 길이 아니라, 사람이 걷고 걸어서 난 좁은 길. 
다산도 이 길을 걸어 아암을 만났을까? 
세죽과 대나무 사잇길을 지나 다산초당에 다다른다. 
다산초당으로 내려가기 전에 구강포를 바라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천일각은 
다산이 살았던 당시 있었던 건물은 아니나,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고향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한강과 비슷하다하여 다산이 향수를 달래곤 했던 장소에 후세 사람들이 세운 것이라 한다. 



다산초당


* 강진 차밭 사이로 산책 
완만한 경사에 펼쳐진 차밭. 
마침 내렸던 비 때문에 살짝 안개가 끼고 촉촉한 공기가 분위기를 더한다. 
차나무 사잇길을 걷는 길 뒤편에는 월출산이 떡 버티고 있다.
월출산은 바위들 때문에 위용있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동글동글한 차밭과 함께 참 잘 어울린다. 
잎을 하나 떼어내 씹어본다. 
쓰고 떫은 끝에 향긋한 녹색맛이 입안에 퍼진다. 





+ 남도라 그런지 음식이 모두 맛있었다. 
바지락으로 유명한 강진에서 먹는 바지락칼국수, 
깔끔한 바지락국과 함께 한 진수성찬 상차림. 
초콜렛같았던 구운마늘, 감자같이 고소했던 구운 토란.. 
강진 재래시장에서 함께 했던 여행자분들은 너도나도 바지락에 야채 등을 구입하셨다.
나도 생강차 만들겠다며 한봉지 샀는데, 과연 언제나 완성하려나?

그리고 강진의 강변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갈대들.. 
이번 여행을 기억하는 하나의 그림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