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출퇴근하기

2012. 5. 24. 00:28생활여행자의 일기


대학생이 된 후 나의 첫 여행은 자전거여행이었다. 그 시절,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동해안 해안도로를 훑거나 제주도를 한 바퀴 돌거나 하는 자전거여행이 막 붐을 일으키고 있었던 듯하다. 나의 루트는 목포에서 시작해 진도, 완도를 찍고 해남, 남해를 거쳐 부산까지 가는 일정이었는데, 그만 해남에서 중도포기, 버스를 타고 안양으로 올라오고 말았다. 섬이 산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던 여행이었고, 체력과 인내력의 한계를 절감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완도에 입성해 눈 앞에 펼쳐진 산을 넘어야 그날의 목적지인 바닷가에 닿는다는 사실 앞에서 좌절했을 때, 무더운 여름날 집에 있었더라면 엄마가 먹기 좋게 썰어놓은 수박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을텐데 라고 후회했을 때, 다시는 자전거를 쳐다보지도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자전거 여행을 했고 꿈꾸었고, 유럽배낭여행보다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에 백만 배는 더 흥분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왜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전거 예찬론을 펼치는가 하면, 한동안 특별한 날에만 타고 모셔두는 역할을 부여했던 자전거가 얼마전부터 나의 출퇴근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친구 집에 안 타는 자전거가 한 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퇴근길에 들러 그 때부터 타고 온 것이 자전거 출퇴근의 시작이었다. 친구는 직장과 집이 자전거로 1시간 거리라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생활인이고, 나는 직장과 집이 자전거로 4시간 거리라 출퇴근은 엄두도 못내고 있었던 터였다. 안양천만 쭉 따라가면 되긴 해서 길이 험하지도 자동차로부터 위협을 받지도 않는 좋은 조건이지만 편도 4시간은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거리였던 것이다. 전철에 들고 타면 좋으련만 커다란 바퀴와 육중한 몸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적이지 않게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피해를 줄 것이 분명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평일 출퇴근 시간에는 자전거 승차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차에, 접으면 손바닥 만해지는(과장 조금 섞어서) 접이식 자전거가 친구 집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친구의 생활 패턴에서는 탈 일이 없다는 그 자전거를 몇 번의 확인 끝에 매우 싼 가격에 데려오게 된 것이다. 보자마자 특히 사이즈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친구는 정녕 이토록 아름다운 자전거를 다신 안 탈 것인가? 충동 아닌가? 마음이 변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몇 번이고 이 자전거가 정녕 필요 없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렇게 무게 10kg 남짓, 접으면 손바닥 만해지는 자전거와 출퇴근길이 시작되었다. 사실 자전거를 타는 구간은 집에서부터 지하철역까지, 지하철역에서부터 직장까지의 약 40분 가량의 거리이다. 지하철에는 물론 손바닥만하게 접어서 싣고 탄다.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1호선 전철에는 간혹 자전거를 위한 거치대가 있는 칸이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버스, 전철로 출퇴근을 하던 때와 시간 차이가 별로 안 난다는 것이다. 내가 엄청 속도를 내는 라이더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버스 기다리는 시간과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시간, 간혹 차가 밀리는 시간이 없으니 총 소요시간의 큰 차이가 없이 가뿐한 출퇴근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요즘 바람이 참 좋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다보니 평소에 버스를 타고 다닐 때는 지나치던 것들을 많이 보고 느끼게 된다. 눈에 잘 안 띄었던 작은 가게에서부터 가로수가 잘 심어져 있는 길을 달릴 때면 맡을 수 있는 나무 냄새까지, 요즘은 어딘가에서 라일락 향기도 끊임없이 난다. 좋은 것만 보면서 달리면 참 좋으련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보니 그 전에는 못 봤던 불편함도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인도와 나란히 자전거 도로를 조성해 두었으나 인도까지 올라온 주차차량이나 쌓여진 짐들 때문에 자전거가 달릴 길은 물론 사람이 지나갈 틈도 없는 길이 많다는 것, 도로 사이의 턱이 높은 부분도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 등이다. 도로 사이의 턱이 높으면 자전거뿐만 아니라 휠체어 이용자도 굉장히 불편할 것이다. 그냥 걸어다닐 때는 몰랐던 것들이다. 자전거 보급률이 70%에 달하는(우리나라는 약 16%) 일본의 비결은 바로 배려와 안전이라고 한다. 자전거가 다니는 도로에 주차를 하거나 짐을 쌓아두지 않는 배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거나 우산을 들고 탈 수 없고, 지정된 곳에 자전거를 세워두어야 하며, 어두워지면 라이트를 켜기로 한 안전을 위한 약속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벌금이 부과되는 것은 당연. 


우리나라는 생활속에서 자전거를 활용하는 인구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열심히 만들고 있지만 자전거 관련법은 여전히 애매모호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차량으로 취급되어 차량과 같은 방향으로 주행해야 하지만, 사거리에서 차량처럼 좌회전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좌회전을 하고 싶으면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는 방법을 사용해야 하지만 반드시 끌고 가야 한다. 만약 횡단보도를 자전거를 탄 채로 이동하다가 보행자와 사고가 나게 되면 100% 자전거 잘못이 된다. 자전거는 차량이니까.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에 자전거 도로가 깔려 있어도 만약 보행자와 사고가 나면 자전거 잘못이 더 크다. 법이 애매모호한 것이 정리되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매모호하든 아니든 그 규칙조차 제대로 알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도 간혹 헷갈린다. 찾아봐서 알게 되어도 안 지켜도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가령, 역주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뜨악하면서도 가끔은 건너편까지 가기 귀찮다는 이유로 짧은 거리를 역주행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등등... 

나 역시 헬멧도 아직 없고, 나와 남의 안전에 무지한, 아직 갈 길이 먼 자전거 라이더지만, 시작은 반이라고 했으니까.. 위로를 하며 하루하루 자전거를 타는 날들이랄까...  


그래도. 어쨌든...

얼마전에는 노랑색 무당벌레 모양의 벨을 달았다. 

사거리를 지나기 전에 한 번씩 차랑~ 하고 경쾌하게 벨을 울려주며 어제보다 더 안전하고 즐거운 자전거 타기를 하고 있다. :-) 

헬멧도 사고, 기본적인 자전거 수리 방법도 틈틈이 익혀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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